1946년 광복영화의 효시 "자유만세"에서 200대 2로 선발된 90세의 하연남 여사는 황려희와 함께 간호사로 나와 국내 배우로는 최고의 연륜을 지닌 스타이다.6,25 전쟁을 겪으며 서울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손을 다친 상흔을 안고 1956년 윤봉춘 감독의 흑백영화 "처녀별"의 타이틀 롤을 맡은 불굴의 여배우 하연남은 그녀의 영특한 연기력으로 주연배우로서의 심혈을 기울인 "처녀별" 은 1956년 엄앵란의 데뷔작 "단종애사"와 함께 56년도 크게 히트를 친 대박영화가 되면서 하연남은 한국의 오드리 햅번으로 높은 인기를 떨쳤다. "처녀별
필자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박하사탕] 이 영화 때문이다.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나이지만 19살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청소년 관람 불가였기에 개봉 후 한참 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를 보는 순간 영화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어린 시절에는 이준익 감독이 우리 동네 근처 미도파백화점에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는 '키드캅' 정도와 그 외 '쥬라기공원', '라이온킹' 외에는 기억이 잘 안 나고 다른 영화는 접해보지 못했다. 오래전 내가 세 살 때인가 우리 형과 나는 어머니 손을 잡
1952년 부산 피난지에서 데뷔작 (1952)를 내놓은 신상옥 감독이 54년 옴니버스 홍보 판 (1954) 이 후 본격적으로 만든 은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55년 1월에 개봉된 작품이다. '춘원 이광수의 문제작 드디어 영화화-!'라는 선전문안과‘은막의 혹성’ 최은희의 말을 탄 모습으로 춥디추운 1월 시공관(명동예술극장)에서 상영하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은 전쟁의 상흔으로 영화를 통해 현실의 대리 만족할 만한 공허한 '꿈'이 관객
지금으로 부터 60년 전,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스크린의 샛별 김지미와 아역 안성기의 데뷔작 "황혼열차"는 1957년 10월 31일 개봉하였다. 을지로 4가 국도극장에서 개봉 할 때 이 두 배우는‘박암’과 ‘도금봉’의 그늘에 묻혀 포스터를 비롯 전단지나 신문광고에 얼굴이나 이름조차 나오지 않아 그 존재가 상당히 미미할 뿐이었다. 당시 고무신 감독(?) 김기영이 명동거리에서 우연히 발탁한 김지미는 진주보다 더한 빛나는 별이 되었고, 김기영 감독의 친구인 안성기의 부친 안화영이 엉겁결에 데리
처음으로 공개하는 1955년 세 번째로 만들어진 "춘향전"의 옥중장면, 춘향역을 맡은 조미령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한 죄로 옥중에 갇혀 있을 때, 춘향모 월매 석금성과 향단 노경희의 촬영된 오래된 스틸이다. "춘향전"은 서울인구 160만 명일 때 10만 명의 관객이 들어 소위 대박을 쳐서 오늘의 1천만 흥행 시대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영화 성장기의 반석과 같은 영원한 고전 "춘향전"은 1954년 대구 달성 공원 일대에서 7월 촬영타가 장마가 와서 40일간 쉬다가 찍은 대망의 "춘향전"은 필름이 분실되어 영원히(?) 볼